남녁엔 매화가 제철이다.
By 페친이신 김천 정호영님 글과 사진
제법 꽃에 대해 쪼메는 안다는 내가 보기에 매화는 별 특징없는 그저그런 꽃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 문인 묵객들은 매화를 왜 그리 좋아들 했을까
수많은 묵객 문인들 중에 매화와 관련한 시 한 수 읊지 않은이 드물고 문인화 화폭에 매화 한점 그리지 않은이 없을 듯 하다.
아치고절(雅致孤節) 새한삼우(歲寒三友)그리고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등등 매화와 관련한 화려한 수식어와 싯귀들은 셀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유별나게 매화를 졸아한 사람들을 뽑자면
송나라때 묵객이자 기인이였던 임포를 먼저 꼽을 수 있다.
오죽하면 매처학자 (梅妻鶴子) 즉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아 살았다 했을까
임포는 매화를 노래한 산원소매(山園小梅)라는 송대를 통털어 가장 절창이라는 명시를 남겼다.
회화에서는 김정희의 문인화를 계승한 조희룡(趙熙龍 1797-1859)역시 매화를 좋아해 “홍매대련(紅梅對聯)”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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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매화라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 퇴계 이황이 있다.
퇴계는 처복이 어지간히도 없던 사람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일찍 여의고 두 번째 부인을 맞았으나 좀 모자란 듯 하여 입고 다니던 흰도포에 구멍이 나자 빨간천으로 기워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정 붙일 곳이 없어서 인지
매화를 사랑하다 못해 심지어 매화를 ‘매형(梅兄)’이라고 부르며 대화를 나누었다 하고,
매화를 주제로 한 시를 백여편 남겼다.
허나 빼놓을 수 없는 이황의 매화에 엃힌 일화는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이와의 애틋한 로맨스다. (이 이야기는 최인호의 소설 명기두향에도 나온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고.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두향이 먼저 첫눈에 퇴계 선생을 흠모 했으나 올 곧은 선비에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였던 퇴계선생은 풀먹인 삼베처럼 뻣뻣하기만 해서 두향의 속을 태웠다.
그러나 두번째 부인과 아들을 연이어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쓸쓸함으로 결국 두향을 받아들이게 된다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던 두향.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의 넷째형 온계 이해(李瀣)가 충청감사로 부임하자 상피제도 (일정한 범위 안의 친족간에는 같은 관사(官司)나 통솔관계에 있는 관사에 취임하지 못하도록하는 제도)에 의해 퇴계는
경상관활인 풍기군수로 전임되었다.
짧은 사랑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청천벼락 같은 이별이였다
떠나기전 마지막 밤,
관기로 관아에 매어있는 두향과 떠나야 할 퇴계
퇴계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허나 앞날은 기약할 수 없구나 ”.
허자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어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결국 이날 밤의 이별은 살아 생전엔 만날 수 없는 생이별로 이어졌다.
이때 매향은 날 보듯 여기시라며 수석 두점과 매화 분재를 하나 퇴계에게 주었다 한다.
그리고 퇴계는 평생을 이 매화 가까이 두고 매화에게 못다한 사랑을 쏫았다 한다.
이후 퇴계는 한양으로 부름받아 부제학과 공조와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안동으로 내려와 도산서당을 짓고 말년을 보내다가 69세때 세상을 뜨게 된다.
결국 퇴계와 매향은 헤어진지 20여년 동안 한번도 회우하지 못했던 것이다.
죽기전 퇴계는 두향이 준 매화분재를 가르키며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의관을 정제하고 곧게 일어나 앉아 세상을 떠났다.
“매화에 물을 주라”는 퇴계의 마지막 말은 퇴계도 평생 두향을 잊지 못했던 거다.
한편 두향은 사또를 모시던 몸이니 기적에서 빼 달라고 퇴적계를 내며 간청하여 기생을 면하고 구담봉 강선대가 내려보이는 곳에 초막을 짓고 시름시름 상사를 않으며 살아가다가
20여년이 지나서 퇴계의 부음을 듣자 소복차림으로 나흘 밤낯을 걸어 안동에 도착해 미천한 신분이라 문상치 못하고 멀리 도산서당이 보이는 곳에서 삼배를 올리고 다시 단양으로 돌아와 퇴계의 단양군수 시절 함께 자주 가던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한곡 부르고는 독약인 비자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퇴계가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었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도산서당을 모체로 증축하여 1576년에 완공되었다.)
지금도 도산서원 앞에는 매화나무가 있는데 두향이 준 매화분재의 후손들이고 옮겨 심고 가꾸어 그 매화가 대를 이어 꽃을 피어 못다한 사랑을 꽃으로 이어오고 있다 한다.
By 페친이신 김천 정호영님 글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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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향기를 말 할때는 암향(暗香)이라고 한다
매화의 향기는 강한 편이 아니여서 밤이 깊어 사위가 적막할 때 비로소 은은하게 스며들어
암향 (暗香)이라고 부른다.
또 달빛에 매화 그림자가 창문에 비치는 것을 매창(梅窓)이라고 하고
매화가 바람에 흔들리는 어렴풋한 그림자의 이미지를 소영(疎影)이라고 한다
그리고 선비나 한량들이 이른 봄 매화를 찾아나서는 나들이를 탐매 (探梅)라 했고
그래서 만난 매화를 보고 즐기는 것을 관매(觀梅)라 하였다
남녁에는 매화가 한창이다.
이 봄날 훌쩍 탐매(探梅)를 떠나시고,
그리고 매화를 만나시거던 맘끗 관매(觀梅) 하시라.
그리고 두향의 아치고절(雅致孤節)의 곧은 절개를 한번쯤 생각들 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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