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페이스북 페친이신 김경성님의 글 퍼옮

산지예찬 2017. 12. 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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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마감하니 새벽 4시다. 

문을 나서자 동장군이 내품는 차가운 입김이 손과 얼굴을 핥고는 거리로 내달린다. 가로수는 옷을 벗고 바들바들 떨고 서있다.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봉지는 덤블링을 하며 저만치 굴러가다 담벼락에 부딪혀 울고 있다.
까만 하늘에 동그마니 떠있는 보름달이 빛을 잃어가고 어둠은 짙어만 가는,어느 추운 겨울 밤이다.
거리는 휑하니 인기척도 없고 차가운 바람만
분주히 지나다닌다.

며칠전 중1 아들녀석이 돌아오는 토요일에 친구네 집에서 파자마파티를 한다고 좋아했었다. 친구들과 밤을 새며 여럿이 놀게 되었다고 무척이나 기대를 하는 모습이다. 
따님은 몇 번의 파자마파티를 했는데 아들녀석은 그게 그렇게 부러웠나 보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동무집에서 매일 밤, 요즘 말로 파자마파티를 했었는데, 곰곰히 기억을 해보니 청소기에 먼지가 빨려들어오듯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속으로 기어들어온다.

내가 자란 마을은 마흔 가구가 조금 넘는 작은 동네이고, 집들도 옹기종기 이웃하고 있어서 밤이면 친구집에 마실을 가는게 쉬운 일이었다. 창석이네 모방은 우리들의 아지트고 파티장이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밖을 나서면 어둠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창석이네 집을 한걸음에 달려갈 수가 있었다.

뚱배(성배),도나(두원),형호,창석,기영,나 이렇게 여섯이 모여서 밤늦게까지 놀았었는데
한참 먹을 때인 우리는 늘 배가 고팠다. 
그래서 항상 먹을 것을 찾았던거 같다. 가장 흔한게 들에 있는 과일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리를 많이 했었다. 참외, 수박,단감
자두,비파, 복숭아, 배. . . .
계절마다 열리는 과일들은 우리 조무래기들이
모두 서리를 해서 먹었다.그중에서도 첫서리 가던 날이 기억이 난다. 첫키스가 짜릿하고 첫사랑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어설품 때문일 것이다.어찌보면 우리의 첫서리도 어설퍼서 기억에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하루는 단감서리를 가자고 해서 여섯이 망태를 메고, 근동 제일 부잣집인 술도가로 향했는데 그믐인지 달도 뜨지않은 깜깜한 밤길을 조심스럽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잔뜩 업드린 자세를 하고서 말이다.
술도가 뒷마당은 수 많은 감나무가 있었는데 탱자나무가 울타리로 둘러쳐 있어 들어가기가 쉽지않았지만 개구멍이 있어서 그곳으로 들어가 밤새 먹을 감을 따고 있는데,저쪽에서 여러 발자국 소리가 들려와 들킨 것같아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모두들 얼음이 되어버렸다.자세히 보니 동네 형들이었다. 우리를 본 형들은 요~ 쬐끄만 것들이 벌써 서리를 다니냐아. 워메! 느그들 때문에 간이 콩알만해져부렀어야!하며 소근소근 이야기를 한다는게 안채에 묶여있던
커다란 도사견이 들었는지 컹컹거리며 난리를 치는 것이다. 우린 놀란 토끼들이 되어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개짖는 소리가 가까워지며 저쪽에서 까만 물체가 달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개다! 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후다닥 술도가를 빠져나왔는데, 그만 신발 한짝이 벗겨진지도 모르고 뛰어왔던 것이다. 엄마가 읍내 5일장에 가서 사준 새신발인데. 오래 신으라고 내 발보다 큰 걸 사준게 화근이었다. 신발걱정을 한참 하고 있는데 뚱배가 없다는 것이라. 우린 걱정을 하면서 기다렸는데 저만치서 뚱배가 울면서 왔다. 뚱배는 도사견에게 엉덩이를 물려서 피가 난다고 울먹였다. 일단 창석이네 모방에 가서 뚱배를 눕혔는데 한쪽 엉덩이 부위의 옷이 찢겨서 있고 그 틈새로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우린 놀란 가슴에 피까지
보자 모두 울고 싶었다.뚱배는 절룩거리며 집으로 갔고 나두 신발 없는 맨발을 끌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신발을 잃어버린 것을 아신 엄마는 "문딩자슥, 하라는 공부는 안허고 도둑갱이 맨치롬 밤마다 싸돌아 댕기든마, 어디다가 신발을 잊어불고 댕겨! 내 원수야!
저 만재갱물에 코박고 디져부러라! 이 써글놈아! 나가 다시는 신발을 사주나봐라! 라시면 화를 내시고는 그 다음장날에 발사이즈에 맞는 신발을 사주셨다. 
뚱배는 개한테 물린 엉덩짝이 덧이나서 띵띵불어 뚱배엄마가 술도가를 찾아가 도사견의 털을 잘라와 그 털을 꼬실러서 발랐다고 했다. 물론 뚱배도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 
처음 간 첫서리는 이처럼 신발을 잊어버리고 개한테 물리는 불운을 겪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난다.

지난 번에도 얘기를 했지만 창석이는 꽈배기를
만들어 먹다가 기름이 튀어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도나랑 형호는 밤에 동네 빨래터인 둠벙에서 몰래 수영을 하다가 이장에게 붙잡혀 귀를 잡혔으며
우리보다 성에 일찍 눈을 뜬 기영이는 어디서 구했는지 야한 잡지를 구해왔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창석이 아버지가 반주에 드실려고 포도주를 담그어놨는데 우리는 그 달작지근한 포도주항아리를 싹 비워버려서 창석이는 며칠을 도망을 다녔었다. 
어쩌면 우리의 파자마파티는 일탈일 수도 있고 비행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들녀석은 경험하질 못할 재미진 추억이다.

지금은 시골에 아이들이 없어서 서리도 없어진지 오래고, 일손이 바빠 따지못한 감들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게, 잠깐 시골을 들리때마다 서글프게 느껴진다. 저 감들을 볼때면 주인을 잃고 애타게 주인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쓰고보니 옛날 얘기가 되었지만 요즘 애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겪어보질 못할 많은 
추억을 나는 가슴에 간직하고 있구나!
아들아! 너희들의 파자마파티는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왕 할꺼면 아빠처럼 신나고 멋진 파자마파티를 하고 놀기를 아빠는 응원한다. 어제 글을 쓰다가 다 못쓰고 오늘 글을 끝내는데 하늘에서 반가운 눈이 내린다. 
그 시절 창석이네 모방에 모인 우리친구들은
중늙은이가 되어 사는게 바쁜지 연락은 없지만
지금 내리는 눈을 보면 그 시절을 회상하며 기뻐할 것이다.친구들이 그리운 밤이다.눈이 내려서 잠시나마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그런 세상이길 바라며서 어쭙잖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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